<동화시>
파란 나비
김율희
놀랐다.
해바라기 얼굴, 달덩이만큼 커지던 날
울 엄마 달에 가셨다.
파란색 우주선 타고
빨간 색 손수건 흔들며
울 엄마 달에 가셨다.
놀랐다.
난 그 때 하늘 속으로 사라지던
울 엄마 연두색 치마 기억한다.
할아버지는 달 떴다고 달 떴다고
내내 헛기침만 하시고
나는 아빠의 등 뒤에서 왔다갔다하는
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.
그들은 바다가 싫다고 했다.
왜 바다가 싫을까?
나는 바다가 좋은데
넘 좋아서 나는 고래가 되는 것이 소원이다.
수염고래나 이빨고래가 되면
내 나이도 칠천만 살이 되는 걸까?
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으니
할아버지가 나에게 할아버지라고 해야 하나.
어쨌든 나는 바다가 좋다.
하늘색 버스를 타고
우리 집 앞에 내린 사람은 머리가 백발이었다.
1
눈이 하도 커서
감고 있어도 뜬 것처럼 보였다.
바람이 철썩거리고 불었다.
그 할아버지의 귀에서 이상한 신호음 소리가 났다.
‘텔레비전을 들고 다니나.’
나는 백발 할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탔다.
갑자기 날개가 돋는 듯 했다.
나는 백발 할아버지의 두 귀를 꽉 잡았다.
떨어질지도 모르잖아.
눈이 팽팽 돌았다.
나는 고래가 되어 하늘 위에 둥둥 떠있었다.
세상에나.
텔레비전을 몸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할아버지가
어느 새
나팔을 꺼내어 힘껏 불었다.
보라색 나팔꽃이 하늘 위로 둥둥 떠다녔다.
나팔꽃은 아침에 꼭 얼굴을 씻는데
난 세수를 안 했다.
저 구름도 세수를 안 했나
왜 저렇게 시커멓지?
우산을 펴든다.
보라색 우산 쓴 이빨고래
백발 할아버지는 어디에 가셨지?
우리 집 고양이는 늘 내게 말하곤 했었다.
“얘야, 저 놈의 털북숭이 강아지를 조심하거라.”
근데 왜 털북숭이 강아지가
자꾸 내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걸까?
빨간 색 이불을 쫙
2
태극기 휘날리듯 쫙
하늘에 펼쳤다.
저 봐라 도망가는 쥐들, 쥐의 무리들…
그 파란 색 우주선은 어디에 있을까?
나도 달에 가야 하는데
울 엄마 따라 달에 가야 하는데
보라색 우산 쓴 이빨고래가 되어
갈 수 있을까?
나무가 사람이 될 때까지
바다가 하늘이 될 때까지
갈 수 있을까?
부엌의 가스레인지 활활 타는데
울 엄마의 부엌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
빨간 망토 입혀줄 엄마는
왜 아직도 안 오시는 걸까?
우리 집 고양이 똥폼 잡으며 말하곤 했다.
“사는 게 말이야. 그게 바람 같은 거라고…”
뭔 뚱딴지 같은 소리
그럼 고양이 너도 바람, 나도 바람
울 엄마도 바람, 울 아빠도 바람
저 백발 할아버지도 바람이란 말인가?
텔레비전을 귀 속에 집어 넣으며
할아버지가 활짝 창문을 여셨다.
새벽이 왔다.
그리움이 사막이 되었는데
동튼다. 새벽이 왔다.
아빠의 등 뒤에는 이제 숲이 울창하다.
울 엄마 파란 우주선 타고
해바라기 울창한 우리 집 마당에 금의환향한다.
3
나는 창을 넘는다.
훌쩍훌쩍, 아니 나풀나풀
나풀나풀
파란 나비 되었다.
놀랐다.
파란 우주선
파란 나비
할아버지는 해떴다고 해떴다고
헛기침만 해대고
파란 우주선의 하늘
파란 나비가 난다.
우리 집 고양이 목 자꾸 늘어난다.
따라오지 마!
너는 파란 나비 아니거든.
파란 우주선 놓쳐.
달에 가야 한단 말이야.
너는 해바라기 얼굴에 묻혀 낮잠이나 자!
놀랐다.
<끝>